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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첫 번째 기념우표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번 첫 번째 기념우표에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개성 경천사지 십 층 석탑', '명성황후 옥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이 4가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익한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첫 번째 기념우표

우표명칭 :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종수 : 4
발행일 : 2021년 2월 26일
발행량 : 752,000(전지 47,000장)
디자인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개성 경천사지 십 층 석탑, 명성황후 옥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문화재는 한국 민족의 역사, 문화 그리고 선조들의 지혜와 전동을 소중히 담고 있는 유산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과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문화재를 다시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국외에 있는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력하여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기념우표를 2021년 2월 발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고자 합니다. 우리 역사오 전통을 되새기며 민족의 보물인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국민들이 문화재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질수록 국외 문화재를 우리 품으로 다시 되찾는 길이 더욱 넓게 열릴 것입니다.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통해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힘쓴 이들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1907년 일본의 궁내대신이었던 다나카 미스야키가 무단으로 개성 경천사지 십 층 석탑(국보 86호)을 반출했습니다. 이 문화재는 미국인 호머 헐버트와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의 노력 덕분에 환수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헐버트는 일본의 영자신문에 조선의 석탑 약탈 사실을 폭로하고 일어났으며,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은 미국인과 영국인 둘이서 협력하여 1918년에 개성 경천사지 십 층 석탑이 우리나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십 층 석탑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높이 13.5m로 웅장하며 석탑 전면의 섬세한 조각 기술이 돋보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석탑은 격동의 한국 역사 속에서도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호하는데 앞장서온 간송 전형필(1906년~1962년)은 사비를 들여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하였으며, 수십 년간 일본에 거주한 영국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국보 270호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특히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는 드문 형상으로, 예술적 가치가 더욱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목조 건물의 기와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문화재입니다. 1934년에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구입한 기와를 되찾아온 사람은 훗날 국립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의 관장이 된 박일훈입니다. 박일훈은 오사카 긴타로를 통해 일본인 소장가인 다나카에게 수막새의 반환을 간곡히 요청하였고, 1972년 10월에 다나카가 직접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하여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기증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대량 유출되었던 '어보'는 각종 국가 의례에 사용되며 왕실의 존엄을 상징하는 인장이었습니다. 명성황후 옥보의 귀환을 도운 건 조창수 여사(1925년~2009년)입니다. 조창수 여사는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아시아 담당 학예관으로 일하던 중, 6.25 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유물 93점을 구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며, 그것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아직 환수되지 않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빠른 시일 내 환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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