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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 및 김대건 신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는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된 우표입니다. 유용한 정보 되시길 바랍니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의 정보
우표명칭 :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종수 : 1
발행일 : 2021년 8월 20일
발행량 : 630,000(전지 42,000장)
디자인 : 성 김대건 신부
2021년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지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9년 11월 14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에서는 2021년 8월 20일 기념우표를 발행하였습니다.
2021년 8월 20일에 발행된 우표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1984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고 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화백이 그린 '성 김대건 신부 성인화'(1983년 작)가 우표에 담겨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표준 영정제작위원회에 의해 한국 교회의 공식 성인 영정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명동대성당 소장으로, 김대건 신부의 근엄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우표의 변지에는 최영철 바오로 작가의 '한국 순교 성인 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당진 솔뫼성지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작품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 아래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길 위를 걷는 김대건 신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변지의 하늘 부분에는 1845년 3월에 김대건 신부가 쓴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당시 계급 사회 안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으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로, 이를 기억하고자 유네스코는 2021년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해로 선정하였습니다. 이 기념우표를 통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추념하시길 바랍니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 및 활동사항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에 충남 당진시 솔뫼(현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정은 여러 세대에 걸쳐 독실한 가톨릭 가정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는 1814년 해미에서 10년 동안의 옥살이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은 가족들의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주하여 김대건 신부는 이곳 용인에서 '재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장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제2차 천주교 박해사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1836년 7월 11일, 15세의 김대건 신부는 프랑스의 피에르 모방 신부에 의해 세례를 받아 신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는 최양업과 최방제와 함께 먼 길을 떠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믿음을 굳혔습니다. 이후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의 지시로, 동북국경에 새로운 선교로를 개척하려고 두만강을 건너서 함경도에 잠입했으나 선교로를 개척하지 못한 채 다시 만주로 돌아갔습니다.
1844년, 소팔가자에서 최양업과 함께 꾸준히 신학 공부를 하여 부제가 되었습니다.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하여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박해를 받은 천주교를 재수습하였습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 연안의 김가항 성당에서 주교 페레올로부터 신품성사를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와 서울에 돌아와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이후 작은 배를 타고 제주도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김대건 신부는 충남 강경 부근 황산포 나바위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힘든 여정과 어려움을 딛고도 굳건한 신앙과 희생의 정신으로 믿음을 전파하며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1846년 6월, 그와 메스트르 신부 일행의 입국 계획이 드러나 황해도 옹진군 흥미면에 속하는 순위도라는 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서울로 압송된 후 나라의 법을 어기고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사실과 천주교회의 중요 지도자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정부는 김대건 신부에게 군문효수형을 선고하였고, 그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대건 신부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시체는 교인들이 몰래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높은 목표를 향한 헌신과 끊임없는 열정의 결과였으며, 그의 헌신과 희생은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김대건 신부를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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